갯마을차차차 촬영지 양포항을 가는 길에 우연찮게 보여서 잠시 들러봤어요.
여기에서 장기라는 거는 지역이름입니다. 장기면~
장기유배문화 체험촌
경북 포항시 남구 장기면 장기로452
주차 : 무료, 전기차충전2면외 일반주차
장기는 신라때는 남으로는 경주의 감포 경계까지 북으로는 현재의 구룡포와 호미곶까지 관장하던 동해안의 중심지역이었다. 관내에는 신라 때에 설치한 시령산성, 만리성 등의 고대 산성들과 고려 현종 2년과 조선 세종21년에 쌓았다는 장기읍성이 있다. 장기는 또한 조선시대 유배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곳이다. 조선시대 형벌제도로 유배형이 실시되고 세종 때 법이 정비됨에 따라 장기는 경성에서 유3천리의 빈해(서울에서 30개역 밖에 있는 바닷가 고을)지역에 해당되어 유배지로 자주 활용되었다.
관리사무소 및 공용화장실
다산 정약용은 1801년 1월19일에 터진 신유박해사건에 연루돼 장기로 유배되었다. 1801년3월9일 장기에 도착한 다산은 마현리 '구석골' 늙은 장교 성선봉집에서 기거했다. 그해 7개월동안 장기에 머문 다산은 인간으로는 가장 불행한 귀양살이 기간이었지만 불굴의 투지로 고통과 좌절을 극복하며 학문연구와 시작에 전념했다.
PC에서 360도로 보시려면, 아래링크를 클릭해 보세요~
우암 송시열은 1675년 6월10일 장기에 도착해 장시성 동문 밖 마산리 사인 오도전의 집에 위리안치 되었다. 1679년 4월10일 거제도로 이배되기까지 4년여 장기에 머문 우암은 17세기 후반 조선사회를 정치, 문화, 사상적으로 지배했던 국로거유답게 변방의 범속한 풍속을 가졌던 장기를 학문과 예절을 숭상하는 유향으로 변화시키는데 큰 역할을 했다. 그는 영남지역 전체에도 영향력을 미쳤는데 인근 고을의 무수한 수령들과 학자들이 문안을 올리고 학문을 전수받기를 간청했을 정도였다고 한다.
아무 의미없는 댓글은 삼가해 주세요. 짧더라도 정성스럽게 달아주세요. 보완할 거 있다면, 최대한 보완할게요~감사합니다.